연재 1 넝마로 만든 푸른 꽃 1 나는 눈사람이 되기 싫다.

2023. 12. 17. 06:00마음공부_책_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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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 넝마로 만든 푸른 꽃 1 김승희 . 나는 눈사람이 되기 싫다.

 

나는 지상의 넝마를 가지고 푸른 꽃을 만드는 그런 속절없는 수공업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랑이란 그런 넝마주의 정신이며, 사랑과 성실만이 우리의 이 한심한 넝마를 영원케 만든다는 것을……

세상은 악과 고뇌로 가득 차 있다. 산다는 것은 우스운 재앙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사랑으로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싸운다는 것은 무의미한 자기 파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우는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엔 쾌락보다는 오히려 인내가 더 많으며, 유희보다는 오히려 노동이 더 많고 기쁨보다는 오히려 애린(愛隣)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성숙한 영혼이 필요할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돈 버는 도구로, 성적인 도구로만 인식하고, 남편은 아내를 가사노동하는 기계, 아이 낳고 기르는 암탉적 도구로만 인식한다면, 사장은 직원을 생산적 수단으로 부하직원은 상사를 자기 출세의 가교로만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이란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이 고스란히 판을 치는 다위니즘의 정글이 되어버리고 말지 않겠는가?

비록 우리 서로 사용하고 사용당하고만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사랑이나 우정의 관계 속에서만은 실리적인 사용 가치로서만 보지 말고 '영원용'으로 남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조금쯤은 있지 않을까?

내가 타인을 일회용 사용 가치를 지닌 '녹는 소비재'로 취급한다면 타인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따스한 날 녹아서 사라지는 눈사람의 녹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나는 눈사람이 되기 싫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그 불멸의 안단테 '엘비라 마디간 ELVILA MADIGAN – Sueden 1967’

성적순 노이로제, 선착순 노이로제가 판치는 이 팔꿈치 사회에 보다 초연한 멍청이들이 많이 나와서 서로 계산 없는 우정을 나누는 '멍청한 공동체'가 점점 자리를 넓혀 추월병에 걸리지 않고도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의 팔꿈치를 밀쳐내지 않는 아름다운 멍청이가 되는 용기를 내야겠다.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느냐? 그러면 항상 떼 속에 머물러 있어라!

꿈에서 절망하고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고, 마치 함정과도 같은 대인관계에서 절망하고, 헛된 일에서 절망할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야 했을 때, 불행한 악몽에 시달릴 때,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패배하여 몸져누웠을 때, 언제나 음악은 한결같이 무한한 부드러움을 가지고 나를 위무 하였다. 아마데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3.5 클라리넷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사과나무는 사과밭을 떠날 수 없다. 스스로 태양을 받아들여 여름과 화해하고, 자신의 본질을 보다 풍성하게 발효하는 것, 그리하여 햇빛이 법열을 스스로 창조하는 것.

우리는 모두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상의 왕국과 현실의 왕국 선의 환한 색채와 악의 검은 심연 위대해지고자 하는 마음과 게으르고 억압된 육체 사이에 우리의 근본적인 숙명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양쪽으로 찢어질 것만 같은 두 개의 얼굴 피카소의 울고 있는 여인의 얼굴과 웃으며 해를 바라보는 여인의 얼굴은 동일한 여인의 것이다.

낙서 그 얼마나 소중한 혼의 방황인가. 낙서를 할 수 있는 노트조차 갖지 않은 젊음이란 너무나 시시해서 불행하게 보일 정도가 아닌가? 흰 노트는 실존의 꿈이다. 흰 노트는 에덴처럼 우리의 작은 순결의 스크린이다. 거기에 영혼의 꽃을 찍어라. 하늘이 스며있는 작은 기도와 같은 영혼의 낱말을.

가난의 벼랑, 질병의 벼랑, 외로움의 벼랑, 증오의 벼랑, 무의미한 탐욕의 벼랑, 헛된 이기심의 벼랑…… 이렇게 벼랑 위에서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상처였다. 너무 비관적인 말 같지만 카프카 <성> <심판> <변신>의 지적처럼 인간의 삶이란 하루하루가 '상처의 대운하'일 뿐이란 말인가?

세상은 있는 데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는 것이라고 석가는 말한다.

사랑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은 이제 없겠지만 나는 사랑이 나의 절벽의 눈금을 때때로 줄여 준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사춘기라 부모들에게서 무의식적으로 주입되어 온 인습적 도덕률의 타율적 지배에서 벗어나 갑작스럽게 다리가 끊어지면서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게 되는 추락 체험의 시기이기 때문에, 사춘기의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수영하는 법을 발견하고 싶고 모색해야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헤엄을 쳐야 한다는 자기 극복과 자기 창조의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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