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최초의 신라인 혜초 왕오천축국전1,300년전 9장 두루마리 227행 6,000여자 필사본

2023. 12. 29. 06:00마음공부_책_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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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최초의 신라인 혜초 왕오천축국전

1,300년전 9장 두루마리 227행 6,000여자 필사본

 

혜초(704~787)는 신라인으로 그 당시 지식인(최치원등), 구법승(원광, 자장, 원측, 의상)들과 같이 당항진(평택항)을 통해서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것으로 추즉된다. 중국 불교에 머물지 않고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및 서역끝까지 법을 구하러 가서, 돌아오는길에 인도, 실크로드 어느 이름없는 곳에 묻히지 않고 밀교의 본고장 서안 대흥선사, 오대산에서 정진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8C 혜초의 탐구정신과 구도정신은, 조선전기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표류한 43명 전원을 생존시키고 귀국후 표해록을 남긴 15C 금남 최부선생의 민족정신과 맞닿아 있음은 나만의 생각일까?

1907년 돈황 천불동 막고굴 17굴, 돈황 석굴 전경, 왕오천축국전

그때 남천축의 여로에서 오언시를 지었다.

月夜瞻鄕路

浮雲颯颯歸

緘書忝去便

風急不聽廻

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日南無有鴈

誰爲向林飛.

달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 구름만 홀연히 돌아가는구나.

구름가는 편에 편지라도 부치려는데,

바람은 거세게 불며 돌아보지를 않네.

내 나라는 하늘 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 모퉁이 서쪽에 있네.

해가 있는 (더운) 남쪽에는 기러기(鴈)*가 없으니,

누가 숲(林: 鷄林=경주)으로 날아가 (소식을 전해) 줄 것인가.

*颯 바람소리 삽, 홀연히 삽

鴈=雁=기러기=안부를 전해줄 사람, 雁書=편지

혜초

인도 - Large Vihara 출처 salam

『왕오천축국전』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혜초가 오천축국의 불적을 순례한 견문록이자 불교여행기이다. 1권이며 필사본이다. 중국 돈황의 천불동에서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P가 발견했다.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존하는 것은 약본이며 앞뒤 부분이 떨어져나간 채 발견되었다. 오늘날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의 견문록인데, 각 지방의 8세기 사회상과 풍습에 대해 언급한 유일한 책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큰 책이다.

다만 약본으로 서술이 지극히 간략하고 국명·지명이 언급돼 있지 않거나 언어·풍속·정치 등에 관한 일반적인 언급도 빈약한 단점이 있다.

현존본은 동부 인도 기행으로부터 비롯되는데, 그곳에 진기한 나체족(裸體族)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 쿠시나가라(Kushināgara)에 대한 견문으로, 이곳은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곳이며, 다비장(茶毘場)과 열반사(涅槃寺) 등이 있음을 기록하였다. 한 달 동안 다시 남쪽으로 여행하여 바라나시(Varanasi-피라날사국, 자이나교, 힌두교 성행<불교흡수>, 갠지즈강)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석가모니가 오비구(五比丘)를 위하여 최초로 설법한 곳(사르나트 즉 녹야원, 다메크 스투파 6C, 아쇼카 석주 3C, 4사자상-인도화폐, 국장)이라 하였다. 다시 동쪽으로 여행하여 라자그리하(Rājagrha, 王舍城)에 닿아 불교 역사상 최초의 사원이었던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참배하고, 『법화경(法華經)』의 설법지 영축산(靈鷲山)을 방문하였다. 다시 남쪽으로 길을 잡아 세존이 대각(大覺)을 이룬 부다가야(Buddhagaya)를 참배하여 대각사(大覺寺)와 보리수 등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혜초의 서역기행 여정도

혜초의 서역기행 왕복노정도

이어서 서북쪽으로 길을 찾아 중천축국으로 간다. 이곳에 이른바 사대영탑(四大靈塔)<마게타국, 시라표저왕, 녹야원,구시나,사성,마하보디사(보리수)에 4대영탑>,이 있다고 하였으며, 각각을 방문하였고,

불려보리원(不慮菩提遠) 보리수가 멀다고 걱정 않는데,

언장녹원소(焉將鹿苑遙) 어찌 녹야원이 그리 멀다 하리오.

지수현로험(只愁懸路險) 가파른 길 험하다고만 근심할 뿐,

비의업풍표(非意業風飄) 업연의 바람 몰아쳐도 개의치 않노라.

팔탑성난견(八塔誠難見) 여덟 탑을 친견하기란 실로 어려운데,

참차경겁소(參差經劫燒) 오랜 세월을 겪어 거지반 타버렸으니,

하기인원만(何其人願滿) 어찌 뵈려는 소원 이루어 지겠는가?

목제재금조(目諸在今朝) 하지만 바로 이 아침 내 눈으로 보았노라.

혜초가 마하보디사 대탑(52m)을 보고 지은시

인도 - 국제사원구역내 각국 사찰

또 석가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도 방문하였다고 한다. 다음 여행지는 남천축국인데 아잔타 · 엘로라 등은 방문한 흔적이 없다. 다시 서북으로 방향을 돌려 서천축국을 거쳐 북천축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지금의 파키스탄 남부 일대와 간다라(Gandhara) 문화 중심지를 차례로 방문하였고, 그 서쪽에 있는 현재의 파키스탄 서북 일대를 답사하였다고 한다.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현재의 카슈미르(Kashmir) 지방을 거쳐 대발률(大勃律) · 소발률(小勃律)<파키스탄 길기트> 등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바라나시_갠지즈강

천불동 막고굴 17굴 - 왕오천축국전 발견 장소

이번에는 거꾸로 간다라지방을 거슬러 내려오면서 스와트(Swat) · 길기트(Gilgit) · 페샤와르(Peshawar) 등지를 방문하였고, 그 북쪽에 있는 오장국(烏長國) · 구위국(拘衛國) 등도 답사하였다. 다시 실크로드를 따라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바미안<범인국, 마애석불사원-7C 현장은 150척 금색 입불석상을 봄, 200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폭발시킴>에 이른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국경지대인 투카라(吐火羅)<토화라국, 토카리스탄>로 간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페르시아(Persia)<파사국, 이란>, 니샤프르<나이사블>를 지난다.<대식국=아랍> 안국(安國) · 조국(曹國) · 석과국(石騍國) · 페르가나국(跋賀那國) 등은 방문하지 못한 채, 그 일대에서 수집한 이야기만을 기록하였다. 그들은 불교를 모르고 배화교(拜火敎)를 믿으며, 어머니와 자매도 아내로 맞는 등 진기한 풍속을 소개하였다. 또 바미안이나 카피스 등에서는 형제가 몇이건 공동으로 한 아내를 맞이한다고 기록하였다.

그곳에서부터 중국으로의 귀로를 잡아 동쪽으로 지금의 파미르고원에 있던 호밀국(胡蜜國)을 지나서 식야국(識匿國)을 거친 다음 총령(葱嶺)을 지나 지금의 중국 영토인 갈반단국(渴飯檀國)에 도착한다. 동쪽으로 카시카르를 지나 구주국(龜註國)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 때가 727년(개원15년 안서도호부 쿠차도착, 절도사 조군, 성덕왕 26) 11월 상순이었으며, 여기서 그의 여행기는 끝난다.

돈황 막고굴 17굴 펠리오P_왕오천축국전

혜초스님 상상도

이 『왕오천축국전』은 약본이기 때문에 인도의 각 지역은 물론,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관한 서술이 지극히 간략하다. 어떤 곳은 지명이나 나라 이름 등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언어 · 풍속 · 정치 등 일반적인 언급도 빈약한 편이다. 따라서 사료적인 가치만 따지면 현장(玄奘)의『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나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 등에 비하여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펠리오.P는 혜림이 810년 저술한 일체경음의<불교 백과사전>에 의거 혜초가 사용한 85개의 단어 <크메르, 곤륜, 사율-자불리스탄, 각멸-베트남 남부지명, 대모-바다거북, 야자방-야자수 등> 를 비교하여 3권정도의 여행기와 성립시기가 810년 이전이라고 스승 쎄나르에게 알린다.

1909년 중국학자 나진옥(羅振玉)에 의하여 『왕오천축국전』임이 확인되었고, 1915년 일본의 다카쿠스(高楠順次郎)에 의하여 밀교문헌인 <대종조증사공대판정삼장화상(불공)표제집-밀교6인 금각사 함광, 신라 혜초, 황룡사 혜과, 숭복사 혜량, 보수사 운교, 각초>을 통해 그 저자가 남천축국 출신 금강지와 불공의 제자 혜초가 신라 출신의 승려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928년 독일학자 푹스(Fuchs,W.)에 의하여 독일어 번역이 나왔고, 1943년 최남선이 원문과 해제를 붙임으로써 널리 국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김충선-혜초의 구법, 마하보디사 대탑(4대 영탑)

그러나 세계 4대 여행기인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드릭 수사의 '동방기행', 이븐바투타의 '이븐바투타 여행기'보다 500여년이 앞선 기록이며, 신라인으로써는 처음으로 천축국(인도) 및 실크로등 전역을 탐험한 수도승이자 탐험가로 북극 난센, 피어리 남극 아문젠, 스코트, 섀클턴, 아프리카 리빙스턴, 스탠리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또한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금남 최부가 쓴 <금남 표해록>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었일까?

최부선생의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표류한 43명을 전원 생존시켜 귀국후 표해록을 작성한 사건 이야말로 혜초(704~787, 726년경 아랍까지 순례한 최초의 세계인, 고선지 탈라스전투 751년보다 25년 빠름)스님이 오천축국 및 실크로드를 순례하고 돌아와 여행기를 남긴 구도정신과 어찌 그리 닮아 있을까?

 

1,300년간 베일에 쌓인 왕오천축국전을 볼수 있는 지금 이 세대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자신도 얼마나 행운인지 즐거울 뿐이다.

아직 실크로드, 인도, 중국(서안, 오대산 건원 보리사, 청량사, 선유사 등), 파키스탄, 아랍 어딘가에 숨어있을 3권으로 추정되는 왕오천축국전 원본이 나타나기를 후세를 위해서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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