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 양양부사 류자한에게 보내는 진정서와 이이의 김시습전을 통해 본 금오신화의 저자 생육신 김시습 연구 1

2024. 1. 2. 06:00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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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 양양부사 류자한에게 보내는 진정서와 이이의 김시습전을 통해 본 금오신화의 저자 생육신 김시습 연구 1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기인이며 시대의 반항아 그리고 유불선 통달, 전국 각지 방랑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김시습에 대해 알아봅니다.

 

◆ 김시습 연대기(1435~1493) *김시습 본인 기술과 이이의 김시습전 인용

·1435년(세종 17년) : 본관 강릉, 서울 성균관 북쪽 빈궁리에서 김일성(음보, 충순위)과 선사 장씨 사이에서 태어남. 신라 김알지 후손인 원성왕의 아우 김주원의 후손임. 증조부 김윤주(안주목사), 조부 김겸간(오위부장). 조은(釣隱) 최치운(강릉, 이조참판)이 시습(時習)이라 이름 지어줌.

·1437년(3세) : 시구를 짓기 시작했으며, <정속(正俗)> <유학(幼學)> <소학(小學)> 배움

·1439년(5세) : 수찬(정 3품) 이계전(1450.7.6. 문종 때 도승지) <문종 당시 김종서 좌찬성, 정찬손 좌부승지, 김문기 우부승지> 문하에서 <중용> <대학> 배움. 만취당 사예(정4품) 조수(趙修-문하에 서거정 등이 있음)에게 열경(悅卿)이란 자를 받음. 정승 허조(許稠)에게 시를 짓다. 세종이 승정원으로 불러 도승지(정 3품) 박이창에게 시험케 함. 세종이 오세(五歲)라 함. 비단 50 필 하사함. 그 뒤 13세까지 대사성(정 3품) 김반에게서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춘추>를 배우고, 겸사성(2품 이상) 윤상(尹祥)에게 <주역> <예기>를 배우다. 제자백가는 스스로 터득함.

·1449(15세)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가 돌봐줌, 3년 시묘살이 하던 중 외할머니 돌아가심. 아버지 병환으로 계모 들임.

·1452년(18세) 조계산 송광사에 머물며 준상인에게 불교를 배움. 서울에 올라와 안신(安信), 지달하, 정유의, 장강, 정사주와 과거 공부하며 형제처럼 지냄. 훈련원 도정(정 3품) 남효례의 딸과 혼례. 어려서부터 영화를 누리고 출세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으며, 친척과 이웃이 지나치게 칭찬하기 때문에 부끄러워함.

·1453년(단종 원년, 19세) : 봄에 과거에 낙방하고 삼각산 중흥사에 들어가 공부함.

·1455년(세조 원년, 21세) : 세종(영릉, 英陵), 문종(현릉, 顯陵) 승하.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하자 책을 불사르고 중이 됨. 설잠(雪岑)

·1456년(22세) : 단종 복위 운동 실패로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고, 작은 돌로 묘표를 대신함.

·1458년(24세) : 봄에 세조가 동학사에 사육신의 초혼각을 세우자 여름에 동학사로 가서 조상치등과 함께 단종을 제사 지냄. 관서 유람 후 <유관서록>을 엮음.

·1459년(25세) : 관동지방 유람. 겨울에 화암사에서 <원각경> 읽음. 고승 해사에게서 불경 강해를 들음.

·1460년(26세) : 다시 관동 오대산을 유람하고, 강릉에 두세 달 머묾. 9월에 <유관동록>을 엮고 10월부터 호서를 거쳐 호남을 유람함.

·1461년(27세) : 호남 유람, 전라도 진원현 묘월 정사와 가성사에서 겨울을 남.

·1462년(28세) : 호남 유람을 마치고,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 정착함.

·1463년(29세) : 가을에 <유호남록>을 엮음. 책을 사러 서울로 왔다가 효령대군의 추천으로 열흘 동안 내불당에 머물며 <묘법연화경> 언해에 참여함.

·1465년(31세) : 경주로 가서 용장사 부근에 금오 산실을 짓고 정착. 3월에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원각사 낙성회에 참여해 세조로부터 도첩을 받음. 4월에 서거정을 만나 글을 주고받았으며, 도봉산 근처에서 여름을 지냄. 가을에 경주 금오산으로 돌아옴.

·1468년(34세, 세조 졸) : <금오신화> 완성됨, <선거집구> 시구 100수 지음.

·1472년(성종 3년, 38세) : 서울 성동 수락산 부근에 임시 거처, 현인을 등용한다는 소식에 벼슬하고 자 육경을 다시 공부함.

·1473년(39세) : 문도 선행과 함께 수락산에 폭천정사에 살며 농사지음. 봄에 <유금오록>을 엮음.

·1475년(41세) 5월에 정업원에서 이틀 밤을 묵으며 불경을 가르치다 사간원의 탄핵을 받다. 일연 사상을 이어받아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를 지음.

·1480년(46세) : 생육신 남효온과 서신을 주고받다.

·1481년(47세) : 봄에 환속하여 조부와 부친의 제사를 지내고 안 씨와 혼인함. 일 년 남짓 지나 사별한 듯함. 남효온이 머무는 봉선사에 가서 함께 즐김.

·1483년(49세) : 폐비 윤씨 사건 발생. 두타(頭陀)의 모습으로 관동으로

떠남. 춘천 청평사에 머물다 홍천, 인제로 옮김.

·1485년(51세) : 강릉에 머물다가 한때 옥에 갇혀 시 <강릉 옥벽에 쓰다>를 지음. 양양 바닷가의 낙진촌에 머물다.

·1486년(52세) : 설악 쪽으로 들어가 검달동에 정착해 농사를 짓다.

·1487년(53세) : 양양부사 류자한이 술과 음식을 보내오자 편지를 보내며 가깝게 지냄. 류자한이 여인(계집종)을 보냈지만 떠남. 벼슬을 권했지만 사양함. <괴애 김수온, 사가 서거정, 금헌 김유> - 옛 친구

·1491년(57세) : 봄에 중흥사에 머무름. 남효온과 김일손이 찾아와 백운대와 도봉산을 유람함. 10월 김일손이 소릉(단종 생모 현덕왕후) 복위 상소문 올림.

·1493년(59세) : 부여 무량사에 머물며 <묘법연화경>에 발문을 씀. 3월에 병으로 사망.

·1495년(연산군 원년) : 무량사 스님들이 매월당의 시신을 화장하고, 사리를 수습해서 부도를 만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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