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3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기인이며 시대의 반항아 그리고 유불선 통달, 전국 각지 방랑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만복사저포기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1. 5. 06:00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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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3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기인이며 시대의 반항아 그리고 유불선 통달, 전국 각지 방랑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만복사저포기에 대해 알아봅니다.

금오신화는 김시습(1435~1493)이 세조가 단종에게 강제로 선위를 받고 단종복위 운동인 사육신 사건을 거쳐 관서 관동 호서 호남을 유람하고 경주 용장사 부근 금오산실을 짓고 정착한 1465년(31세) 이후에 저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입력

김시습은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으며, 유불선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습니다.

 

만복사저포기는 남원의 만복사를 배경으로 노총각 양생과 왜구의 침입으로 원혼이 된 개녕동 처녀의 환신인 만복사 부처의 힘을 빌어 인연을 맺는다는 이야기로 시공을 초월한 사랑의 완성을 통해 현실의 불운을 보상받으려는 역설적인 구성의 작품입니다. 마치 홍콩영화 천녀유혼을 연상케 합니다.

금오신화가 쓰여진 15세기 후반을 전후한 시기에는 패설문학이 아주 성행하였습니다. 성임의 <태평광기상절>, <태평통재>가 바로 이 시기에 나왔으며, 서거정의 <골계전>, <태평한화>, 강희맹(세종이 이모부, 강희안의 형)의 <촌담해이> 성현의 <용재총화>가 모두 이 시기에 나온 저작들입니다. 이 저작들은 당시 민간의 언어와 생각, 민속적 관념 등이 사대부의 언어와 문화와 활발하게 교섭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대부 계급이 가지고 있던 기층문화에 대한 관심, 민속이나 민간설화에 대한 정서적 친근감은 이 시기 패설문학이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금오신화>를 탄생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김시습의 귀신설화에는 음양이기의 작용으로 기가 모여 태어나면 사람이 되고 흩어져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했으며, 기가 멸하면 이 역시 없어져 아무 징조도 없게 되는 상태가 귀라고 했습니다. 다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피살되면 그 기가 무형중에 엉켜 있으나 오래되면 자연 흩어지고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의하면 양생이 만난 여인은 왜구의 난에 정조를 지키려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으로 여인의 기는 아무 징조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기 전에 무형 중에 엉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수 있습니다.

<전등신화> 등목취유경원기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

전등신화는 1378년 명나라 구우가 쓴 괴기소설집으로 처음에는 40권으로 지어졌으나 현재에는 20편의 단편과 부록 1권만이 남아있습니다. 구우는 전당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평생 불우하여 지방에서 낮은 벼슬을 하면서 떠돌아 다녔습니다. 구우가 살던 시대는 당나라 사람들이 지은 염정소설의 문체로 작품을 쓰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염정소설은 신이하고 괴기스러운 내용을 섞어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쓴 것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어체로 쓰는 것이 특징 이었습니다.

김시습은 <전등신화>를 읽고 "전등신화 한편만 읽어도 입을 벌리고 웃을 만하니 내 평생의 뭉친 가슴을 쓸어 없애준다." 고 했을 만큼 <전등신화>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김시습은 문장의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 분개하여 벼슬과 인연을 끊고 평생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민간에 떠돌아 다니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듣고 이것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써보고자 했습니다. <금오신화>의 다섯 작품이 모두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한 기이한 이야기로 꾸며진 것은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신광한의 <하생기우전>

고려 때 집안이 매우 가난하고 또한 부모마저 일찍 여윈 하생은 재주가 있고 학문이 빼어나 국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정이 부패하여 과거 시험이 공평하게 치러지지 않았습니다. 하생은 자신의 운명을 점치고 싶어 낙타교 아래에 산다는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점쟁이는 서울의 남산의 남쪽 문으로 가면 좋은 배필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생은 점쟁이의 말대로 남쪽 문으로 갔습니다. 날이 저물었고 마침 어느 집에 머물게 되어 그 집의 여인과 시를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두어 정을 통했습니다. 날이 밝자 여인은 자신이 귀신임을 밝히고 하생에게 금청 하나를 건네 줍니다. 여인은 금척을 어느 절 앞에 있는 하마석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면 이것이 인연이 되어 자신과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생이 여인의 말대로 하자 얼마 후에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와서 그 금척이 죽은 딸의 무덤에 매장한 물건임을 확인합니다. 그들은 하생과 함께 죽은 여인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열어보니 여인이 곧바로 깨어나 자신은 단지 꿈을 꾸었다고만 합니다. 여인의 부모들은 하생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여인의 설득으로 두 사람을 결혼시킵니다. 이듬해 하생은 장원급제를 하고 높은 벼슬을 누리며, 두 사람은 백년해로 합니다. 결혼 하는날 하생이 점쟁이를 찾아 갔으나 이미 종적이 사라진 뒤 였습니다.

신광한(1484~1555)의 하생기우전은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입니다.

 

<만복사저포기>는 비록 짧은 분량의 단편이지만 구성상에 있어아주 잘 짜여진 수작입니다. 모처럼 갖게 된 애정이 주인공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승과 저승이라는 벽으로 인해 단절되어야 하는 비극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작품 전체에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해 가는 가운데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만복사저포기>는 다양한 형식과 정서를 보여주는 한시와 부처에게 올리는 발원문, 제문 등의 산문체가 다양하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시는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개녕동에서 여인과의 이별을 앞두고 여인의 이웃에 사는 정씨, 오씨, 김씨, 유씨 등이 읊은 시들은 그녀들의 외모에 대한 묘사만큼이나 뚜렸한 개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시는 김시습 자신이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를 통해 세상과 교감하기 위한 플롯 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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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wi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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