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6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기인이며 시대의 반항아 그리고 유불선 통달, 전국 각지 방랑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용궁부연록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1. 8. 06:01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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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6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기인이며 시대의 반항아 그리고 유불선 통달, 전국 각지 방랑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용궁부연록에 대해 알아봅니다.

금오신화는 김시습(1435~1493)이 세조가 단종에게 강제로 선위를 받고 단종복위 운동인 사육신 사건을 거쳐 관서 관동 호서 호남을 유람하고 경주 용장사 부근 금오산실을 짓고 정착한 1465년(31세) 이후에 저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시습은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으며, 유불선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습니다.

 

<용궁부연록>은 <남염부주지>와 함께 몽유를 통해 다른 세계체험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서사의 구조상 등장인물의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아주 약합니다. 이야기의 진행도 단순히 한생이 꿈속에서 용궁으로 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인정을 받고 풍류를 즐기다가 깨어난다는 이른바 조신의 꿈과 같은 몽유설화의 전통을 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궁부연록>은 김시습 자신을 가탁한 우의소설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 한생은 김시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인물입니다. 한생이 어려서부터 글에 능하여 조정에 이름이 알려진 것처럼 김시습 또한 신동이었고 어릴 때 승정원에 들어가 세종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름만 떨쳤을 뿐, 그에 걸맞은 벼슬을 얻어 본 적이 없는 일개 문사로 평생을 보낸 것입니다.

여기서 김시습은 한생을 통해 자신의 꿈을 표출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용왕과 세 신과 같이 최고의 인물들한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또 거기에 걸맞은 지위를 누리고 싶은 꿈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삽입시의 양이 다른 작품에 비해 많고 또 그 질에 있어서도 우수하다는 것은 자신의 글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한생이 가장 먼저 구슬과 빙초를 찾는 것은 바로 이 물건들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진귀한 보배였기 때문에 비단에 싸서 간직하고 남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것은, 현실세계를 가치없이 생각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한생의 재능을 인정하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생이 세상을 등지고 명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 것은 그를 알아주지 않은 현실의 세계보다 그를 알아주는 지은이 있는 꿈속의 세계를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금오신화 용궁부연록

금오신화가 쓰여진 15세기 후반을 전후한 시기에는 패설문학이 아주 성행하였습니다. 성임의 <태평광기상절>, <태평통재>가 바로 이 시기에 나왔으며, 서거정의 <골계전>, <태평한화>, 강희맹(세종이 이모부, 강희안의 형)의 <촌담해이> 성현의 <용재총화>가 모두 이 시기에 나온 저작들입니다. 이 저작들은 당시 민간의 언어와 생각, 민속적 관념 등이 사대부의 언어와 문화와 활발하게 교섭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대부 계급이 가지고 있던 기층문화에 대한 관심, 민속이나 민간설화에 대한 정서적 친근감은 이 시기 패설문학이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금오신화>를 탄생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전등신화> 수궁경회록 <금오신화> 용궁부연록

전등신화는 1378년 명나라 구우가 쓴 괴기소설집으로 처음에는 40권으로 지어졌으나 현재에는 20편의 단편과 부록 1권만이 남아있습니다. 구우는 전당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평생 불우하여 지방에서 낮은 벼슬을 하면서 떠돌아 다녔습니다. 구우가 살던 시대는 당나라 사람들이 지은 염정소설의 문체로 작품을 쓰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염정소설은 신이하고 괴기스러운 내용을 섞어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쓴 것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어체로 쓰는 것이 특징 이었습니다.

김시습은 <전등신화>를 읽고 "전등신화 한편만 읽어도 입을 벌리고 웃을 만하니 내 평생의 뭉친 가슴을 쓸어 없애준다." 고 했을 만큼 <전등신화>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김시습은 문장의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 분개하여 벼슬과 인연을 끊고 평생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민간에 떠돌아 다니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듣고 이것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써보고자 했습니다. <금오신화>의 다섯 작품이 모두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한 기이한 이야기로 꾸며진 것은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신광한의 <최생우진기>

최생은 두타산 무주암에 은거하는 서생이다. 같이 사는 중공선사와 함께 두타 동굴에 있다는 용추를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만다. 중공은 혼자 돌아와 최생이 기녀에세 현혹외어 멀리 떠났다고 사람들한테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최생이 검은 학을 타고 돌아와 그 동안 자신이 겪은 용궁에서의 체험을 들려 주었다. 최생은 용궁의 만화문으로 들어가 용왕을 면회했다. 거기서 산신, 도사, 산신이 초대된 자리에 참석하여 용궁회진시를 짓자 이어서 신선이 율시를 짓고, 도사와 산신이 이어받고, 용왕도 시를 지어 이들과의 기이한 인연을 축하했다.

최생은 신선이 주는 환약을 받았는데 이것은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 약이었다. 최생은 10년후 봉도에서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이들과 이별하였다. 초대객들이 용궁의 문을 나오자 최생은 검은 학을 타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온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마친 최생은 중공에게 함께 용궁을 구경하지 못한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 후 최생은 산에 들어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중공은 무주암에서 오래 살면서 최생이 겪은 신선 체험을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신광한의 최생우진기는 조선 중기작품으로 김시습의 용왕부연록를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용궁부연록>은 개성 천마산에 박연이라는 이름의 용추에 용신이 있다는 전설로 시작해 고려때 송도의 한생이 용왕의 사신을 따라 용궁에 들어가 용왕 딸을 위한 별각의 상량문을 지어주고 용왕의 연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시재를 뽐내는 몽유적 비현실적 소설로 구성이 정교하여 서정적인 시어로 문학사적 가치가 높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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