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7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기인이며 시대의 반항아 그리고 유불선 통달, 전국 각지 방랑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취유부벽정기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1. 9. 06:05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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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7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기인이며 시대의 반항아 그리고 유불선 통달, 전국 각지 방랑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취유부벽정기에 대해 알아봅니다.

 

금오신화는 김시습(1435~1493)이 세조가 단종에게 강제로 선위를 받고 단종복위 운동인 사육신 사건을 거쳐 관서 관동 호서 호남을 유람하고 경주 용장사 부근 금오산실을 짓고 정착한 1465년(31세) 이후에 저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시습은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으며, 유불선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습니다.

홍생은 개성에 사는 인물로 장사를 위해 평양으로 옵니다. 또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부벽정에 오릅니다. 그곳에서 강렬한 회고적 역사의식을 느끼고 시를 읊다가 기씨녀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 부벽정에 관련된 비극적, 역사적 사실을 회고하며 그 반역사적 과거 사실에 감개합니다.

기씨녀는 기자왕의 딸로서 기자 조선을 멸망시킨 위만의 침략 전쟁에 의해 희생 당한 여인입니다. 그러다 문득 조선의 비조라고 칭한 신인이 나타나 기씨녀를 자부현도로 인도하였고 나중에 항아의 시녀가 되어 천상계의 일원으로 편입됩니다. 그러나 언제나 늘 현실 세계를 갈망하여 신선 세계를 떠나 부벽정으로 하강하여 홍생과 만남을 가집니다.

금오신화가 쓰여진 15세기 후반을 전후한 시기에는 패설문학이 아주 성행하였습니다. 성임의 <태평광기상절>, <태평통재>가 바로 이 시기에 나왔으며, 서거정의 <골계전>, <태평한화>, 강희맹(세종이 이모부, 강희안의 형)의 <촌담해이> 성현의 <용재총화>가 모두 이 시기에 나온 저작들입니다. 이 저작들은 당시 민간의 언어와 생각, 민속적 관념 등이 사대부의 언어와 문화와 활발하게 교섭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대부 계급이 가지고 있던 기층문화에 대한 관심, 민속이나 민간설화에 대한 정서적 친근감은 이 시기 패설문학이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금오신화>를 탄생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송도에 사는 홍생이 평양의 부벽정에서 노닐다가 기자 조선 마지막 왕의 딸인 기씨녀를 만나 시를 주고받으며 하룻밤을 지새운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작품의 구성상 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대신 기승전결의 이야기 전개가 뚜렷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생규장전> 이나 <만복사저포기>에서 볼 수 있는 소설적인 긴장감이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와 도교사상에 대한 김시습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특히 민족사의 전통성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단군왕검→기자조선→고구려 →고려로 이어지는 역사관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단종에게 왕위를 빼앗은 세조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과도 연결됩니다. 기자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는 시가 작품안에 다수 실려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홍생이 기자왕의 딸 기씨녀를 사모하여 죽은 것은 바로 단종에 대한 연모의 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작품은 다른 작품과 달리 기씨녀가 자신이 신선이 되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도교의 중심사상인 신선사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천상에 있는 여자 신선이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과 시를 주고 받는 것은 당나라 대 소설인 <목천자전>밖에 없습니다. <목천자전>은 천제의 명을 받아 천하를 다스리고 있는 서왕모가 나타나 주나라 목왕과 시를 주고 받는다는 내용인데 김시습은 <목천자전> 보다는 <전승신화>의 <감호야범기>에서 이 작품을 구상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전등신화> 감호야범기 <금오신화> 취유부벽정기

전등신화는 1378년 명나라 구우(1347년~1427)가 쓴 괴기소설집으로 처음에는 40권으로 지어졌으나 현재에는 20편의 단편과 부록 1권만이 남아있습니다. 구우는 전당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평생 불우하여 지방에서 낮은 벼슬을 하면서 떠돌아 다녔습니다. 구우가 살던 시대는 당나라 사람들이 지은 염정소설의 문체로 작품을 쓰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염정소설은 신이하고 괴기스러운 내용을 섞어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쓴 것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어체로 쓰는 것이 특징 이었습니다.

 

김시습은 <전등신화>를 읽고 "전등신화 한편만 읽어도 입을 벌리고 웃을 만하니 내 평생의 뭉친 가슴을 쓸어 없애준다." 고 했을 만큼 <전등신화>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김시습은 문장의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 분개하여 벼슬과 인연을 끊고 평생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민간에 떠돌아 다니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듣고 이것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써보고자 했습니다. <금오신화>의 다섯 작품이 모두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한 기이한 이야기로 꾸며진 것은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전등신화> <감호야범기>

<감호야범기>는 남주인공이 벼슬을 하지 않은 풍류인이고 여주인공도 천상의 선녀로 시녀를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취유부벽정기>와 같습니다.

또한 남주인공이 강 위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누대에 올라 흥취를 이기지 못하여 시를 지어 읊는 것도 유사한 것을 보면 <감호야범기>를 모태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 갯더니 구름이야 하염없이 한 꿈이라

가신 님은 언제나 퉁소 불며 돌아올꼬

대동강 푸른 물결 무정하다 마소서

님 여윈 저곳으로 슬리 울며 나는구나."

 

"우리 아가씨께서 당신의 재주를 몹시 사랑하시어 견우성 막하의 조사 벼슬을 명령하셨사오니 하루 속히 부임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홍생이 깜짝 놀라 깨어 깨끗하게 목욕을 한 뒤에 향을 태우며 자리를 정리하고 잠깐 누웠다가 문득 세상을 떠나게 되니 바로 9월 보름이었다.

그의 시신을 빈소에 안치한 지 여러 날이 되어도 얼굴빛이 전혀 변화지 않았다. 이를 두고 세상에서는 "홍생은 아마 신선을 만나서 시신이 선화한 것 같다." 고 하였다.

 

김시습이 1493년 59세의 나이로 무량사에서 죽고나서 초분을 거쳐 3년후 다비식을 거행할때 <취유부벽정기>의 홍생과 같이 얼굴빛이 살아 있을때와 똑 같아서 불도들이 무량사에 김시습 부도를 만들어 준 사실이 어찌 그리 소설과 똑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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