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05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 조선 개국 사업 1호 종묘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2. 7. 06:01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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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005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 조선 개국 사업 1호 종묘에 대해 알아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즉위식에서 내린 첫번째 명령은 종묘를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개성에 있는 옛 고려의 종묘를 헐고 그 자리에 새 왕조의 종묘를 건립합니다. 그후 도성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면서도 제일 먼저 종묘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종묘는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의미는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조선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을 만들었습니다. 사직단은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시는 곳이고, 종묘는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시는 곳을 말하는데, 이것은 중국 고대의 예법에 따른 것입니다.

종묘 안에는 왕들의 신위가 모셔진 정전을 비롯해 영녕전과 재궁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재궁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종묘에 도착한 왕이 잠시 머물렀던 곳입니다. 정전안에 모셔져 있는 신위를 보기 위해서는 신실문을 열어야 하는데 신실은 일 년에 단 한 번 종묘 대제를 지낼 때만 열 수 있습니다.

신위는 '저건'이라 불리우는 천으로 덮여 있는데, 왕은 흰색, 왕비는 청색의 '저건'을 사용했습니다. 영혼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구멍이 나 있는 신위에는 묘호와 왕의 공적을 요약한 존호가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신위 옆에는 '어책' 과 '어보' 를 모시는 함이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어책' 과 '어보' 는 예술적 재능뿐 아니라 왕실의 재력을 총동원하였을 만큼 종묘에 왕의 신위를 모시는 일은 국가 최대의 행사였습니다.

왕이 승하하면 곧바로 종묘로 모셔지는 것이 아니라, 소상과 대상을 치를때까지 신위는 빈청에 모셔졌으며, 3년 상이 지난 후에야 신위를 종묘에 모셨습니다.

연산군, 광해군은 종묘에 모셔지지 않고, 왕으로 재위하지 않았으나 왕으로 추존된 세조의 아들 덕종과 정조의 아버지 장조(사도세자), 사도세자의 형인 진종,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 등이 새롭게 추존된 왕들이다. 단종은 숙종때 복위되고 종묘에 모셔졌다. 결국 종묘에 신위를 모신다는 것은 왕조의 정통성을 이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현재 종묘에는 모두 34명의 왕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19명의 왕만 정전에 모셔져 있고 나머지 왕들은 영녕전이라는 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영녕전은 세종때 지어진 건물로 세종 3년에공정왕(정종)의 신위를 모셔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 태조와 4대조인 환조, 도조, 익조, 목조의 신위가 모셔져 있어서 5칸의 신실이 모두 차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영녕전을 지어 정전에 모셨던 목조의 신위를 영녕전으로 옮기는 대신 빈 신실에 공정왕(정종)의 신위를 모시기로 결정합니다. 그후 대개 5대가 지나면 종묘의 신위를 영녕전으로 옮기게 되었고, 이것을 '조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5대가 지나도 영녕전으로 옮기지 않는 '불천지주'가 있는데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등 19명은 정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렇게 '불천지주'로 정해진 왕들을 '세실'이라고 했는데, 이 '세실' 을 정하는 기준은 조선의 건국 이념인 성리학적 질서를 어떻게 정치로 나타냈느냐가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따라서 성리학적 질서가 자리잡히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세실'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는 종묘를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종묘는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만이 아니라 훌륭한 문화 유산으로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태조가 한양 천도를 결정한 이후 다른 궁궐들과 함께 건축되었던 종묘는 궁궐들과는 달리 단순하면서도 꾸밈없이 수수한 건축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청은 2가지 색만을 사용함으로써 절제된 아름다움이 흐르고 지붕을 덮은 기와에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또한 제사를 올리던 단인 월대에 깔린 박석은 낮은 건물과 어울려 장엄하면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영조때는 15칸으로 늘어났고, 현종 2년에 이르러 지금의 형태인 19칸으로 늘어났습니다. 궁궐이 산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면 종묘는 죽은 자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된 공간입니다.

조 / 종 / 조

종묘에 신위를 모실때 사용한 호칭으로 조/종/조 가 있습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호칭인 태조 태종 세종 세조등 이를 묘호라 하는데 묘호는 왕이 죽고 난 후 왕의 재위시 행적에 대한 신하들의 평가인 동시에 추존하는의미를 담아 결정했습니다.

<예기> 에 "공이 있는 자에게는 '조'를 붙이고, 덕이 있는 자에게는 '종'을 붙인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조선 27명의 왕 중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7명만이 '조'를 붙이고 왕의 취급을 받지 못했던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나머지는 '종'자 묘호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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