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24 조선왕조실록 예종실록 편찬경위 예종과 장순황후 한씨 안순왕후 한씨의 생애와 치세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3. 15. 06:00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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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024 조선왕조실록 예종실록 편찬경위 예종과 장순황후 한씨 안순왕후 한씨의 생애와 치세에 대해 알아봅니다.​

예종실록 편찬 경위

'예종실록'은 총 8권 5책으로 되어 있고, 원래 이름은 '예종양도대왕실록'입니다. 1468년 9월에서 1469년 11월까지 예종 재위기간 1년 2개월 동안에 일어난 각 방면의 사건들들이 편년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예종실록' 은 예종이 죽은 다음 해인 1470년 2월에 내려진 왕명에 따라 사초를 꺼냈으나, 그 당시에 '세조실록'이 편찬되지 않은 관계로 편찬 작업이 지연되었습니다. 그후 1471년(성종 2년) 12월 '세조실록'이 완성되자 곧바로 편찬 작업에 들어가 반년 뒤인 1472년 5월에 완성되었습니다. 편찬작업은 신숙주, 한명회를 춘추관 영관사로 하여 최항의 감수 아래 강희맹, 양성지 등이 맡았습니다.

세조 가계도

예종의 생애와 치세(1450.1.1~1469.11.28, 재위기간 1468.9.~1469.11. 1년 2개월)

예종은 세조의 차남이며 정희왕후 윤씨의 소생입니다. 1450년 사저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황(晄) 자는 명조 입니다. 해양대군에 책봉되었다가 1457년(8세)에 그의 형 의경세자가 까닭없이 죽자(단종모 현덕왕후 혼령에 시달림?) 여덟 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1468년 9월 7일 19세의 나이에 세조의 선위로 왕위에 오릅니다. 왕위에 오른후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조선 최초)을 받았는데, 신숙주, 한명회, 구치관 등과 같은 원상들의 결정에 따라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는 예종의 업무 수행 능력을 신뢰치 않은 세조가 죽기전에 마련해 둔 것이었습니다.

남이(1441~1468, 세종 23년~예종 즉위년) : 태종의 4녀 정선공주와 의산군 남휘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정선공주가 세종 6년에 죽은 것으로 보아 남이는 후실의 소생이거나 정선공주의 양자인 듯 하다. 세조 3년에 무과에 장원급제. 1467년 포천지역의 도적을 토벌하고 1467년 이시애의 난을 구성군, 유자광과 함께 토벌해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됨. 또한 서북면의 여진족 토벌과 압록강 건너 파저강 유역의 야인을 공격해 세운 공으로 공조판서에 임명되었고, 곧이에 병조판서(정2품-대감)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유자광(병조 참지-정3품)의 모함으로 국문끝에 능지처참을 당하였다.(영의정 강순도 연루되어 처형됨) 순조 18년에 영의정 남공철의 상소로 관작이 복구되었다.

출처 입력

예종은 14개월의 짧은 재위기간 중 직전수조법을 제정하여 각 궁과 관아에 딸린 밭인 둔전을 백성이 지을 수 있도록 관제를 개혁하였고 최항 등에게 <경국대전>을 편찬케 했습니다. 또한 1469년에는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서 왜와의 개별 무역을 금지시켰습니다.

재위중 '남이의 역모사건'이 발생해 예종은 남이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을 처형했고, 사건이 종결된 지 얼마되지 않은 1469년 11월 2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난 뒤 명나라세서 '양도'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조선에서는 묘호를 '예종'이라 올렸습니다. 정식 칭호는 '예종양도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 입니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서오릉)에 마련 되었으며 능호는 '창릉'입니다. 부인으로는 정비 장순왕후 한씨(한명회 큰딸)와 계비 안순왕후 한씨가 있으며 이들로부터 2남 1녀를 얻었습니다.

                                                                               창릉_예종 안순왕후한씨

 

장순왕후 한씨(1445.1.16~1461, 17세, ~) : 아버지는 청주한씨 한명회로, 1445년에 태어났다. 1460년에 세자 예종과 가례를 올려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461년 원손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병으로 17세에 죽었다. 1472년 성종에 의해 장순왕후로 추존되었다. 능은 경기도 파주에 있으며 능호는 '공릉'이다.

안순왕후 한씨(?~1480.12.23, 세, ~) : 아버지는 청주한씨 한백륜으로, 1461년 장순왕후 한씨가 죽자 1462년에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468년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1469년 예종이 병으로 죽자 인혜대비로 봉해졌다(1471년). 1479년 다시 명의대비로 개봉되었다. 1480년 12월 창경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의 '창릉'이며 예종과 함께 묻혔습니다.

제안대군(1466~1525.) : 예종과 안순왕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인성대군이 어릴 때 죽자 왕위 계승후보로 1순위 였다. 그러나 예종이 20세에 승하하자 그때 나이가 4세 였다. 이에 세조비 정희왕후는 한명회와 결탁하여 자을산군(한명회의 사위)을 왕으로 지목했다. 제안대군은 평생 권력에 욕심을 갖지 않고 노래와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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