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55 조선왕조실록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국문소설 조선의 금서 채수의 설공찬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2024. 5. 25. 06:00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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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055 조선왕조실록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국문소설 조선의 금서 채수의 설공찬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최초 발견 조선의 금서 <설공찬전>

조선 중종때 채수라는 문신이 썼던 <설공찬전>은 귀신이 산 사람의 몸에 들어가 말을 하는등 허무맹랑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금서가 되었던 소설로 이 책의 존재는 지금까지 기록으로만 전해져 왔다가 1997년 우연히 이문건<1494년(성종 25)~1567년(명종 22), 을사사화 때 유배중 죽음, 뒤에 이황(李滉)·조식(曺植)·성수침(成守琛)·이이(李珥) 등이 이문건의 시문을 즐겨 읊었다 한다>의 묵재일기 뒷면에 기록된 채 490년 동안이나 숨겨져 있다가 발견된 것이다.

채수(蔡壽, 1449.8.8~1515.11.8, 세조5년 출생)는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인천.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이다. 1469년(예종 1)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대사헌, 충청도관찰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에 녹훈되고 인천군(仁川君)에 봉군되었다. 저서로 《나재집》 2권이 있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이자김안로는 그의 사위들이다.

1468년(세조 14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69년(예종 1년) 식년 문과에 장원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1470년(성종 1년) 예문관수찬이 된 뒤, 홍문관교리·지평·이조정랑 등을 역임하면서 《세조실록》,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음악에도 뛰어나 1475년(성종 6년) 성종 때 이조정랑으로서 장악원의 일까지 맡아보았다.

1477년(성종 8년) 응교가 되어 임사홍(任士洪)의 비행을 탄핵했으며,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우승지, 좌승지, 도승지를 거쳐 대사헌으로 있을 때 폐비 윤씨(廢妃尹氏)를 받들어 휼양할 것을 청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벼슬에서 물러났다.

1485년(성종 16년) 비로소 서용되어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가 1488년(성종 19년)에 성절사(聖節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거쳐 1494년(성종 25년)에는 호조참판이 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이후 줄곧 외직을 구하여 무오사화를 피하였다. 1499년(연산군 5년) 이후 예조참판·형조참판·평안도관찰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갑자사화 때는 앞서 정희대비(貞熹大妃)가 언서(諺書)로 적은 폐비 윤씨의 죄상을 사관(史官)에게 넘겨준 것이 죄가 되어 경상도 단성으로 장배(杖配)되었다가 얼마 후 풀려났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여기에 가담,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고 인천군(仁川君)에 봉군되었다.

그 뒤 후배들과 함께 조정에 벼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경상도 함창(咸昌)에 쾌재정(快哉亭)을 짓고 은거하며 독서와 풍류로 여생을 보냈다. 사람됨이 총명하고 박람강기하여 천하의 서적과 산경(山經), 지지(地誌), 패관소설(稗官小說)에까지 해박하였다.

1703년(숙종 29년) 함창의 사림에 의하여 그의 고장에 임호서원(臨湖書院)이 건립되고 표연말(表沿沫)·홍귀달(洪貴達) 등과 함께 제향되었다. 저서로 《나재집》 2권이 있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설공찬전>은 모두 7장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글자 수로는3,000여 자밖에 되지 않은 짧은 소설이다. <설공찬전>의 발견은 우리나라 국문소설의 출발점을 바꿔 놓았다. 허균의 <홍길동전>보다 무려 100년이나 앞선 작품으로 김시습(1435~1493)의 금호신화 이후에 나온 우리나라 두번째 소설이자 한글로 표기된 최초 소설로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

《설공찬전》

이 소설은 1511년(중종 6년) 무렵 채수(蔡壽)가 지은 고전소설이다. 《중종실록》에서는 ‘설공찬전(薛公瓚傳)’,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에서는 ‘설공찬환혼전(薛公瓚還魂傳)’으로 표기하였고, 국문본에서는 ‘설공찬이’로 표기하고 있다.

한문 원본은 1511년 9월 그 내용이 불교의 윤회화복설을 담고 있어 백성을 미혹한다 하여 왕명으로 모조리 불태워진 이래 전하지 않으며, 그 국문필사본이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默齋日記) 제3책의 이면에 《왕시전》·《왕시봉전》·《비군전》·《주생전》 국문본 등 다른 고전소설과 함께 은밀히 적혀 있다가 1997년에 발견되었다. 국문본도 후반부가 낙질된 채 13쪽까지만 남아 있다. 다만 어숙권의 언급에서 결말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본래 한문으로 쓰였고 한글로 번역되어 크게 유행했다. 현재 한문본은 전하지 않으며, 국문본은 설공찬의 영혼이 사촌 형제 설공침의 몸에 빙의하여,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키다가 저승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까지만 전하고 있다. 당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불교 윤회, 지옥, 무속적 내용인 귀신 빙의 등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애초에 한글로 창작되지는 않았으나, 한글로 표기된 최초 소설이라는 점에서 소설사적 의의가 크다.

출처 입력

<설공찬전>의 인기 비결

귀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설공찬전>은 그 당시 백성들에게 무척 인기 있었던 소설이다. <종종실록> 6년(1511년) 9월에 <설공찬전>이 최초 등장하는데 사간원에서 '채수가 쓴 설공찬전은 재난과 행복이 반복된다는 내용으로 매우 요망할 뿐만 아니라 조정과 민간이 모두 그 내용에 홀려서 문자로 옮기거나 이야기를 통해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갈팡질팡 헤매게 만든다.' 라고 종종에게 보고하여 모두 불사르게 하고 숨기고 내놓지 않으면 처벌한다고 하여 금서가 되었다.

<대동야승>에는 '설씨 집안의 일을 그대로 전하여 백성들을 미혹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설공찬전>을 직접 읽은 어숙권은 <패관잡기>에 <설공찬전>의 끝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말과 글을 그대로 적어 전할 뿐 한 자도 붙이지 않아 모두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한 것이다.' 실화처럼 여기지도록 했다.

실제로 순창 설씨의 족보를 확인해 보면 <설공찬전>의 인물 5인중 설공찬의 증조할아버지인 설위와 아버지인 설충란, 작은아버지인 설충수까지 모두 실재 인물이다. 그러나 설공찬과 설공침은 족보에서 찾을 수 없다. 채수는 이렇듯 당시 실존했던 인물들을 소설속에 절묘하게 등장시키므로써 이야기를 더욱 실감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호기심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채수는 세조 5년(1449년)에 태어나 1469년 실시된 3번의 과거에서 모두 1등으로 합격한 수재로서 조선시대 3가지 과거에 무두 장원한 사람은 집현전 학사 이석형과 채수 둘 뿐이었다.

채수는 강직한 성품으로 언관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뛰어난 학식과 문장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그러던 인물이 난데없이 귀신 이야기를 써서 큰 파문을 일으켰고 세상을 어지럽혔다고 주변에서는 교수형까지 주장하였으나 결국 중종은 반정공신이었으므로 파직시키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

<설공찬전>에서 주목할 점은 저승의 인물들이 간신, 충신, 반역자 등 정치적인 인물이 많았고, 중종반정 2~3년이 지난 시점에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왕과 간신배들은 무두 지옥에 떨어졌다고 써 놓은 부분이 공신들을 자극하였고, 또한 저승에서 여성들은 글만 알면 어떤 일이든 맡을 수 있다는 대목이 유교적 질서를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채수는 중종반정 이후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에 있는 쾌재정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반정공신들의 권력다툼을 지켜보며 <설공찬전>을 지었던 것이다. 채수의 문집 <나재집>에도 실리지 못한 금서 <설공찬전>이 이황 조식 이이가 존경했던 묵재 이문건의 묵재일기 뒷편에 조용히 실려있어 490년만에 빛을 보게된 것은 국문학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것으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1,300년 만에 빛을 보게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쾌재였다. 또한 <설공찬전>은 반정공신인 후배들의 비뚤어진 정치 현실을 매섭게 꾸짖는 언관 채수의 경고였다.

老我年今六十六 / 늙은 내 나이 금년에 예순여섯

因思往事意茫然 / 지난일 생각하니 생각이 아득하다

少年才藝期無敵 / 소년 시절에는 재예(才藝)로 대적할 자 없기를 기약하였고

中歲功名亦獨賢 / 중년에는 공명이 또한 홀로 훌륭하였다

光陰滾滾繩歎繫 / 세월은 흐르고 흘러 탄식에 묶여 매였고

雲路悠悠馬不前 / 청운의 길 아득한데 말은 달리지 않는구나

何似盡抛塵世事 / 어찌하면 티끌세상의 일 다 벗어던지고

蓬萊頂上伴神仙 / 봉래산 정상의 신선과 짝이 될 수 있을까.

쾌재정기 - 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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