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53 조선왕조 실록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비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2024. 5. 23. 06:00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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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053 조선왕조 실록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비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비들의 삶

문정왕후 윤씨가 일으킨 을사사화를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완전히 축출당한 사림파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단단히 다지고 있었다. 문정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고 척신세력의 우두머리였던 윤원형이 정계에서 추방당하자 사림세력들은 속속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선조 초부터 훈구세력은 사림세력에 밀려 위축된 데다 왜란을 계기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에 사림세력들은 의병활동을 통하여 정치적 기반을 더욱 확대시킬수 있었다.

사림파들의 재등장으로 예학과 명분, 정통론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함께 국가나 사회의 기본질서가 아버지, 남편, 아들이 중심인 수직관계로 재편성되었다. 기존의 부부, 부모, 자녀라는 수평관계가 부자, 군신, 적서, 주노, 장유관계 등 철저한 상하주종 관계로 변한 것이다.

이는 점차 축소되어 가던 여성의 지위를 더욱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 예로, 선조 이전에는 재산 상속과 제사봉사에서 여성들의 권한이 어느정도 인정되었으나, 이후에는 그 권한마저 박탈당했던 것이다.

우선 자녀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던 재산 상속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사위나 외손이 처가 외가의 재산 분배과정에서 배제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굳이 처가 또는 외가를 따라 거주할 필요성이 없어졌고, 도처에는 부계 친족 중심의 동족부락이 생기게 되었다. 더불어 부계중심의 상속은 딸과 외손과 외손녀의 제사 참여를 철저히 막았다.

많은 재산이 적장자에게 상속되면서 각 가문의 종가 또는 지파의 종손들이 그 재산을 몇 세대를 계승하는 동안 만석군, 천석군 등 대지주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거대한 문중이 생겨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정책이 향촌 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일반 서민에게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을 포상 받은 열녀의 신분을 보면 알 수 있다. 15세기에는 열녀 중에서 사족의 처가 76%, 군인의 처와 양녀, 천민의 처가 19% 였던 것에 비하여 이 시기에 이르면 사족의 처가 43%, 군인의 처와 양녀, 천민의 처가 모두 합하여 52%를 차지하였다. 이렇듯 유교적 여성관은 하층계급으로까지 확산되어 조선 사회에 절리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땅에 떨어진 시기에 왕실에서의 왕비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문중이 당파를 중심으로 연합하던 당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친정문중과 떨어질 수 없었던 왕비들은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출처 : 조선왕비 오백년사 윤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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