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57 조선왕조실록 사림 정치의 본격적인 서막을 열다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5. 29. 09:17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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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057 조선왕조실록 사림 정치의 본격적인 서막을 열다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에 대해 알아봅니다.

인순왕후 심씨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 윤씨가 죽자 단칼에 윤원형과 보우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한가지 후사가 없다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왕비 심씨가 순회세자 부를 낳기는 하였지만 13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순회세자는 7세에 세자로 책봉되어 윤원형 인척인 안덕대와 친밀한 황대임의 딸 황씨를 간택하였으나, 혼인날을 10일 앞두고 순회세자가 갑자기 배앓이를 하여 파혼되었며, 황씨는 세자의 양제로 봉해졌으나 얼마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순회세자는 세자빈으로 참판 윤옥의 딸 윤씨를 맞이하였다. 윤씨 나이 10세로 세자보다 2살 어렸다.

그러나 혼인한지 1년만에 순회세자는 요절하고 만다. 일설에 의하면 여색을 너무 밝혀 시뻘건 피를 토하고 자리에 누운지 사흘만에 죽었다고 한다. 어쩟든 명종은 후사가 없어 좌불안석이 되고 정사를 소홀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핏줄을 이를 아들만을 광적으로 원해 아들을 잘 낳는다는 소문만 있으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그 여인과 잠자리를 하였다. 무수리 장씨를 후궁으로 삼기도 하였는데 그녀의 오라버니는 군졸이었으나, 누이가 후궁이 되자 무예별감으로 승진되어 명종에게 누이의 거짓임신을 알렸고 명종은 그날 바로 달려가 무수리 장씨를 만나 정성이 지나쳐 무리하다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인순왕후 심씨(1532.5.25~1575.1.2, 44세) : 인순왕후 심씨는 청송 심씨 심강(심온 5대손)과 완산부부인 이희경(효령대군 6대손)의 딸이며, 1532년에 태어나 14세 되던 1545년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문정왕후의 힘에 눌려 중전의 지위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1567년 명종이 죽은 뒤, 16세의 선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면서 그 위상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권력이나 정치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섭정 1년 만에 수렴청정을 끝내고 17세의 선조에게 친정을 시켰으며, 이후로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과 친지들은 명종때부터 정권에 깊숙히 관여하여 그녀의 외숙인 이량과 족친 심통원, 그리고 친동생인 심의겸과 심충겸 등이 세력을 형성해 파벌을 이뤘다. 그녀는 1575년 창경궁 통명전에서 4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으며 단 하나뿐인 아들 순회세자는 13세에 요절했다. 능은 명종의 능과 같은 언덕에 마련되었으며 능호는 '강릉' 이다.

명종이 세상을 떠나자 심씨가 지목하였던 하성군인 선조가 그 뒤를 이었다. 물론 인종비 인성왕후 박씨가 있었으나, 인순왕후 심씨는 외삼촌 이양, 동생 심의겸 및 영의정 이준경 좌의정 심통원(작은 할아버지) 우의정 이명등의 힘으로 왕위계승권의 결정권을 심씨가 갖게 되고 수렴청정을 요구받았다.

글을 모르는 심씨가 그의 형님뻘인 박씨를 제치고 수렴청정을 하게 된것은 그녀의 친정집안의 세도 때문이었다. 그러난 심씨의 수렴청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조광조의 제자 백인걸의 상소로 인해 1년여만에 수렴청정을 거두고 개국후 156년 동안 훈,척신세력 중심에서 초야에서 도학정치를 꿈꾸며 수학해온 사림들이 정계에 전면으로 나서게 되었다.

심씨는 수렴청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선조에게 항상 여자를 조심시키는 일이었다. 아들 순회세자나 명종의 너무 많은 궁녀들 틈에 있다가 세상을 뜨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양주 공빈김씨 묘_조선시대 김씨 왕비의 서막(광해군 모친)

선조 나이 16세인데 상을 치르느라 아직 혼인을 못하고 있었다. 양부인 명종의 3년상, 그리고 생모상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심씨는 선조가 이성에 눈을 뜨지 못하도록 대전에는 모두 나이든 상궁들로 배치했다. 그리고 젊은 궁녀들은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선조는 소주방 나인 출신으로 훗날 공빈까지 오른 김씨에게서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임해군과 광해군이었다. 둘째 광해군은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지만 인조반정(광해군 15년)으로 패주의 신세가 되어 유배지 제주도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한편 3년상이 끝난후 심씨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며느리로 의인왕후 박씨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박씨는 잉태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조는 심씨의 바람과는 달리 많은 후궁들을 거느리고 후궁들 사이 알력다툼이 치열했으며, 이를 정계에 진출한 사림들이 자신들의 당파를 위해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수렴청정을 거둔 지도 7년이 지나 심씨는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순왕후 심씨는 사림들의 정치시대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어머니 문정왕후 윤씨의 태릉 옆인 강릉으로 명종과 함께 안장되었다.

강릉_명종 인순왕후 심씨

능은 양주의 '태릉' 동쪽(현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마련되었으며, 능호는 '강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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