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 연암 한문소설의 대가 박지원 광문자전 김신선전 4 광문이 거지의 두목에서 약국점원, 금융업 등의 경제활동에 관여하면서 명성을 얻어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2024. 1. 13. 06:00마음공부_책_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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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4 연암 한문소설의 대가 박지원 광문자전 김신선전 4 광문이 거지의 두목에서 약국점원, 금융업 등의 경제활동에 관여하면서 명성을 얻어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광문은 종로에서 걸식하는 거지의 두목으로 외모는 추하지만 의협심이 있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어진 성품을 지지고 있습니다. 살인의 누명을 쓰고 집단에서 쫒겨나지만 누명의 원인이 된 죽은 거지 아이를 남 몰래 묻어 주는 인정 많은 행동을 합니다. 이르 빌미로 취직하게 된 약방 주인에게 절도 협의를 받았을 때 정직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이해 타산으로 얽힌 각박한 당시 사회에 천냥의 보증을 선뜻 서 주는 등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의협심으로 세인들의 명망을 얻습니다.

집주인은 광문의 순박함과 정직함을 알아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문을 의로운 자라고 생각하고 약방에 취직을 시켜 줍니다.

약방부자는 광문이 절도를 했다고 의심을 하지만 오해가 풀리자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광문의 사람됨을 두루 알려 주는 적극적인 도움을 줍니다.

운심은 장안의 유명한 기생이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납니다. 광문 또한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 만석놀이를 좋아하고 철과춤을 잘 추는데 운심은 광문의 이러한 재능에 응하여 스스로 춤을 춥니다.

광문은 고귀한 혈통을 갖고 태어나거나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도 아닙니다. 종루 네거리 저자를 돌아다니며 밥을 구걸하는 걸인으로 같은 걸인들에 의해 살인 누명을 쓰고 추방되기도 하고, 도둑으로 몰려 구속되기도 하며, 약방에 고용되는 동안 돈을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결국 성실한 행동으로 주변인들의 모범이 되고 사랑의 실현을 통해 인간애를 꽃피우고 있습니다.

광문은 결혼 문제를 통해 평등은 남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있다고 말하고 운심이란 기녀를 통해 지감이 있는 인물로 추앙됩니다.

이 작품은 연암이 18세인 1754년에 쓴 작품으로 연암이 쓴 초기 구전 가운데 세번째 작품 입니다. 매우 짧은 분량의 실재 인물을 그린 소설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여러 사건들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우수한 작품 입니다.

연암이 이 작품에서 보여 주고자 한 주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실상과 명성은 서로 걸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문은 보잘것 없는 걸인이지만 광문이 갖고 있는 명성은 대단한 것 이었습니다.

광문의 실재 모습은 더럽고 추했지만 그가 행한 행위는 오히려 순수하고 거짓이 없으며 병든 거지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의 인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은 허명을 쫓아다니는 당시 양반들의 위선을 비판하려는 작가의 창작 의도와도 연결됩니다.

또 약방 주인이 광문에게 자신이 소인이라고 하고, 지체 높은 양반 사대부들이 광문과 교제하기를 청한다는 부분에서는 바로 <예 덕선생전> 에서 볼 수 있는 계급타파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연암 스스로도 이 작품을 역작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작가의 명성을 얻기도 하였을 만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할 작품 김신선전

김신선의 속명은 홍기로서 벽곡한 지 여러 해만에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자 국내의 명산을 두루 찾아다니는 인물이었다. 하루에 수백 리를 달리고 밥을 먹지 않았으며 겨울에는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는 부채질을 하지 않아 사람들은 그를 신선이라고 불렀다.

그 무렵 나는 우울병에 시달렸는데 김 신선의 방기가 기이한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고 싶었다. 사람을 시켜 그의 행적을 백방으로 찾았으나 허사였다. 어느 곳에서 그가 장창교의 임동지한테 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집에 찾아 갔으나 김홍기는 간밤에 술을 잔뜩 마시고 아침에 이미 강릉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

김홍기는 키가 7척이 넘으며 여윈 얼굴에 수염이 나고 눈동자는 푸르며 귀는 길면서 누르다고 했다. 나는 계미년에 다시 그를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이듬해 나는 관동을 유람하던 중 "선암에 벽곡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올라갔을 때에는 탑 위헤 동불과 신발 두짝이 있을 뿐이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신선 사상에서 완전히 탈피해 새로운 해석을 내린 작품입니다. 연암은 방문각외전 머리말에 "홍기는 큰 은사인데, 그는 도시나 명산에 노닐며 숨어 지냈다. 그의 처세는 청탁을 둘 다 잃지 않았으며, 남을 헐뜯지도 않았으며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김선선전을 지었다" 고 썼습니다.>

김홍기는 신선으로 대표되는 세상에 숨어사는 사람으로 연암은 여기서 신선을 기이한 능력을 지닌 선인으로 보지 않고 세상에 뜻을 얻지 못한 사람으로 봄으로써 현실의 제도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관직에 등용되지 못한것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

김홍도 운상신선
연암의 세계관과 문학관

연암의 세계관은 자연 내지 우주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기초위에 성립되어 있습니다. 홍대용의 지전설에서 도움을 받아 독창적인 지전설을 주장하여 우주는 둥글고 등근 것은 필히 돈다는 명제를 내세웠습니다.

연암은 실용성이 없는 논쟁만을 일삼는 성리학이나 사장학을 철저히 배격하고 중국을 배우자는 북학사상과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을 주장하였습니다.

연암은 '법고창신'의 고귀함을 밝히고 사실위주의 문장론을 주장하며, 문학의 표현에 있어서 너무 아름답고 품위있는 용어만을 사용하여 꾸미려고 하는 것은 현실을 잘못 표현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생생하게 나타낼 것을 주장합니다.

또한 연암은 그릇된 사회를 해학과 풍자로 묘사하는 필체를 구사했습니다.

김홍도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 中 진주담, 견본담채, 30.4㎝ x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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