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36 조선왕조실록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 경릉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4. 13. 06:00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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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036 조선왕조실록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 경릉에 대해 알아봅니다.​

조선왕릉 위치도

소혜왕후_인수대비

서오릉 입구에 들어서 바로 올라가다가 왼편으로 방향을 바꾸어 조금 가면 홍살문이 먼저 나온다. 홍살문에서 시작하는 참도로 올라서면 정자각과 안내판 그 오른편에 수복방이 바라보인다. 안내판을 보면 이곳 경릉이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임을 알 수 있다.

세조때부터 시작한 동원이강 형식의 능제에 따라 왕는 왼쪽 왕비는 오른쪽에 있는것이 상례인데 여기서는 반대이다. 추존왕 덕종은 오른쪽 언덕에 능이 있고 소혜왕후 한씨의 능은 왼쪽에 있다.

덕종의 봉분은 매우 간소하다. 봉분에는 병풍석은 물론이고 난간석마저 없으며 무인석도 없다. 까닭은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가 1457년 9월 2일 병세가 악화되어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의 박장주의 소신대로 대군묘제도 형식으로 장례를 치른 까닭이다.

덕종으로 추존된 뒤인 1478년(성종 9년) 한명회가 왕릉제로 바꾸어 난간석, 망주석 등의 석물을 설치할 것을 아뢰었으나 목조, 익조, 탁조, 환조의 능의 전례에 따른 것이라는 대왕대비 소혜왕후의 명에 따라 그냥 두었다고 한다. 귀면이 조각되지 않은 고석이 받치고 있는 상석과 그 앞의 팔각 장명등, 시립하고 있는 문인석만 좌우 양쪽에 있을 뿐이다.

경릉_덕종(의경세자) 능침

덕종은 1438년(세종 28년) 9월 15일 수양대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장이고 자는 원명이며 초명은 숭이다. 덕종의 어머니 정희왕후 윤씨는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덕종을 궁중에서 낳았다고 한다. 덕종은 체격이 준수하고 용모가 단아하여 세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1445년(세종 27년)에 도원군에 봉해지고, 1455년(세조 1년)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 소혜왕후 한씨를 비로 맞아 월산대군과 성종을 낳았다. 덕종은 어려서부터 예절이 바르고 글읽기를 즐겼으며 해서에 능했으나 병약했다고 한다. 1457년(세조 3년)에는 병세가 악화되어 21명의 승려가 경회루에 공작재를 베풀고 병의 치유를 빌었다고 한다. 1471년(성종 2년)에 의경왕으로 추존되고, 1476년(성종 7년)에 묘호를 덕종이라 했다.

소혜왕후의 능은 추존왕 덕종과 달리 생전에 왕비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왕릉 형식을 갖추었으나, 세조 이후의 양식에 따라 봉분에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을 두르고 문,무인석과 망주석 상석 팔각의 장명등 여덟 마리의 석양 석호가 있다.

소혜왕후(인수대비) 한씨는 덕종의 후비로서 1437년(세종 19년)에 태어났으며, 1455년(세조 1년)에 세자빈에 간택되어 수빈에 책봉되었고, 월산대군(1454~1488)과 자산대군(성종)을 낳았다. 소혜왕후는 청주 한씨로 서원부원군 한학<대명외교 총수, 세조 책봉을 받아오던중 객사1456.10.>의 둘째딸이자 좌리공신 한치인의 누이동생이다. 그녀의 고모는 명나라 영락제의 후궁(20세 떠나 24세에 순장됨)이었고, 언니는 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의 소생 계양군의 아내가 되었다.

한확(1400~1456.10.19) : 청주 한씨로 고려 시중을 지낸 한강의 후손이며, 순창군수(종4품) 한영정의 아들이다. 음서로 부사정(종7품)에 오름. 누나를 명나라 공녀로 보내 영락제 주체의 여비 한씨로 책봉되고 본인은 광록시소경<정5품>의 벼슬을 지냈다. 미풍준정으로 외모가 좋아 황제의 부마로 거론되기도 함. 명 선종 선덕제에게 누이를 진상함(공신부인에 봉함). 첫딸은 세종의 서자 계양군(신빈김씨 소생)에게 둘째 소혜왕후는 의경세자에게 시집 보냄. 3남은 세종의 적녀였던 정의공주의 차녀와 혼인함.

소혜왕후는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정치에도 많은 자문을 했다. 불심이 깊어 불경을 언해하기도 했고 부녀자를 위하여 지켜야 할 도리인 <여훈><내훈을 지었으나, 성종의 여인은 15명 자녀는 30명으로 후궁들간 투기가 심하였다>을 간행했다.

또한 아들 교육을 엄격하게 하여 세조가 폭비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후에 손자되는 연산군이 생모 윤씨가 모함에 의해 폐위, 사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관련자들을 박해하려 하자, 병상에 있으면서 이를 꾸짖었다 한다. 이때 연산군이 머리로 받아 얼마후 창경궁 경춘전에서 승하하니 춘추 68세 였다.(1504년 4월 27일, 연산군 10년) 소혜왕후는 덕종이 승하한 후 47년을 더 살아 세조대는 물론 예종, 성종, 연산군대까지 살다가 승하했다.

소혜왕후 한씨는 남편 의경세자 덕종과 함께 고양시 용두동의 서오릉(경릉)에 안장되어 있다.

경릉_소혜왕후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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