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39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편찬경위 및 중종의 생애와 치세 중종시대 세계 약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4. 23. 08:56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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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039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편찬경위 및 중종의 생애와 치세 중종시대 세계 약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중종실록_오대산 사고본

 

편찬 경위

'중종실록'은 총 105권 10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1506년 9월부터 1544년 11월까지 중종 재위 38년 2개월 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명칭은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실록" 입니다. 편찬작업은 1545년 2월 대간의 건의에 따라 실록청을 설치하고 당상과 낭관을 결정해 착수하려 하였으나 순조로이 진행될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해 7월 인종이 재위 9개월 만에 죽자 중단되었습니다. 명종 즉위 후 1546년 가을, 춘추관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인종실록>과 함께 편찬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도 기묘사화와 관련해 총재관이 자신의 해임을 신청하는 일로 어려움에 부닥쳤습니다. 실록 편찬 총재관에 임명된 우의정 정순붕이 이듬해 2월에 사직의 의사를 밝혔는데 그 이유는 기묘사화 이후의 사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시비가 그치지 않자, 편찬관들 사이마저 의견대립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심연원이 총재관으로 임명되었으나 그 또한 버티지 못하고 '이기' 로 총재관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편찬 작업을 진척시켜 1550년 10월에 실록을 완성했고, 이듬해 3월 <인종실록>과 함께 최종 마무리를 한 후 사초에 세초와 실록 봉안이 이뤄졌습니다.

편찬에 참여한 인물로는 감춘추관사 총재관을 맡았던 정순붕, 심연원, 이기 등이며 지춘추관사는 윤개 등 동지춘추관사는 박수량 등 25인, 편수관은 심통원 등 45인, 기주관은 유관 등 17인, 기사관은 정순우 등 37인이었고 총 134인이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종실록> 은 완성된 이후에도 사실의 공정성을 의심 받았습니다. <연려실기술>에서 '기묘사화에 대한 기록이 당시의 실상과 차이가 많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묘사화 때 사관들이 비밀정사에 참석치 못해 훈구파들에 의해 사실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기 때문입니다.

중종의 생애와 치세(1457.7.30~1494.12.24, 재위기간 1469.11.~1494. 12. 25년 1개월)

중종은 성종의 차남으로 정현왕후 윤씨의 소생입니다. 1488년 3월 5일에 태어났고, 이름은 역, 자는 낙천입니다. 1494년 진성대군에 책봉되었고, 1506년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추대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19세 때 였습니다. 반정세력에 의해 추대된 중종은 왕권이 미약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사림세력을 끌어들여 개혁을 하려 했지만, 조광조의 급진적 경향을 참지 못하고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숙청합니다.

그 후 권력다툼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거듭되고 각종 사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중종이 사림의 조광조를 끌어들인 것은 성종시대의 도학정치를 부활시켜 태평성대를 구가하려는 의도였지만, 반정 직후의 복잡한 권력다툼으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정릉

중종은 38년 2개월 동안 왕위에 있다가 1544년 11월 14일에 인종에게 전위하고, 이튿날 5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명나라에서 '공희'라는 시호를 내렸고, 조선에서는 묘호를 '중종'으로 올렸습니다. 여기에 여러 시호가 추가되어 정식 묘호는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 입니다. 능은 광주 선릉 동편(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마련되었고 능호는 정릉 입니다. 중종은 3명의 정비와 9명의 후궁을 두었으며, 적자적녀 2남 5녀와 서자서녀 7남 6녀를 얻었습니다.

중종시대 유럽에서는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로마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 95개 조항을 발표해 종교혁명이 본격화되었고(1517년), 그 때문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종교전쟁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영향을 적게 받았던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남아메리카, 인도, 인도네시아 등을 침략해 제국주의 시대를 열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또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1543년)' 을 주장했고, 마젤란은 세계여행을 떠났으며, 스페인의 로욜라는 예수회를 창립, 반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 를 발표했고, 네델란드의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을 편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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