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49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편찬경위 및 명종의 생애와 치세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 명종시대 세계약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 5. 4. 06:00백촌 김문기 선생 조선왕조실록

728x90
반응형

연재 049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편찬경위 및 명종의 생애와 치세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 명종시대 세계약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박시백_조선왕조실록_명종편

편찬 경위

'명종실록'은 총 34권 3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545년 7월부터 1567년 6월까지 2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편찬과정에 대해서는 실록에 정확히 적혀 있지 않고, 다만 <선조실록> 에 '1568년 8월 춘추관에서 영의정 이준경과 우의정 홍섬의 주재하에 편찬회의가 개최되었고, 총재관 홍섬 이하 당상, 낭청의 임명이 있은 3년 뒤인 1571년 4월에 완성되었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편찬 작업에 참여한 인물은 감춘추관사 홍섬, 지춘추관사 오겸, 이황 등 9인, 동지춘추관사 박순 등 10인, 편수관은 이제민 등 20인, 기주관은 유도 등 17인, 기사관은 홍성민 등 20인으로, 총 77명 이었습니다.

<명종실록> 의 특징으로는 다른 실록에 비해 보기 편하게 편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의 기록을 연대순으로 배열하되, 날짜가 바뀌면 줄을 바꾸어 기록했는가 하면, 같은 날의 기사로 대체적으로 국왕 및 왕실에 대한 일이나 대외 관계, 죽정 집행 및 이에 대한 의정부 삼사, 육조의 상서, 지방 행정, 천문수리학 등의 순으로 배열해 놓았고, 사론을 본문과 분리시켜 그 위치를 명확히 했습니다.

명종 가계도

명종의 생애와 치세(1534.5.22~1567.6.28, 34세, 재위기간 1555.7.~1567. 6. 22년)

명종은 중종의 차남으로 문정왕후 윤씨의 소생으로, 1534년(중종 29년) 5월 22일에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환' 이며 자는 '대양' 입니다. 1544년 경원대군에 책봉되었다가, 이듬해인 7월 인종의 유명에 따라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12살의 나이였으며, 모후인 대비 윤씨(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윤대비의 수렴청정 기간은 8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윤대비의 동생 윤원형이 정권을 좌지우지했습니다. 윤원형은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사건' 등을 일으켜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윤원형은 뇌물을 받아 엄청난 재물을 축적했고, 관직을 함부로 파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눈에 거슬리는 자는 가차없이 삭직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강릉_명종_인순왕후 심씨

윤원형의 권세는 1565년 문정왕후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문정왕후가 죽자 윤원형과 정난정은 힘을 잃고 지방으로 쫒겨나 자살하였습니다. 명종은 마침내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치를 열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불과 2년 후인 1567년 6월 28일, 34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양주의 백정 출신인 임꺽정이 1559년에서 1562년 사이에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탐관오리를 죽이는 등 횡행하였고, 밖으로는 삼포왜란 이래 세견선의 감소로 곤란을 받아오던 왜인이 1555년 배 60여 척으로 전라도에 침입하여 영암·장흥·진도 등을 유린하는 을묘왜변(乙卯倭變)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들 왜인은 이준경·김경석·남치근 등에 의해 영암에서 격퇴되었고 이를 계기로 명종 9년(1554) 이전까지는 전시에만 설치되는 임시 관청이었던 비변사가 정규 관청이 되어 독자적인 합의기관으로 되었습니다.

인순왕후 심씨

명종은 22년 동안 왕위에 있었으면서도 어머니 문정왕후의 지나친 간섭과 억지에 떠밀려 자신의 정책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불행한 왕이었습니다. 명나라에서 시호를 '공헌' 이라 했고, 조선에서는 묘호를 '명종' 이라 했습니다. 그 외에 여러 시호와 존호가 추가되어 정식 칭호는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 입니다. 능은 양주의 '태릉' 동쪽(현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마련되었으며, 능호는 '강릉' 입니다. 명종은 1명의 정비와 1명의 후궁을 두었고, 자녀는 아들 한명 이었습니다.

왕위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셋째 아들이 계승하였으니 그가 바로 선조입니다.

인순왕후 심씨(1532.5.25~1575.1.2, 44세) : 인순왕후 심씨는 청송 심씨 심강(심온 5대손)과 완산부부인 이희경(효령대군 6대손)의 딸이며, 1532년에 태어나 14세 되던 1545년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문정왕후의 힘에 눌려 중전의 지위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1567년 명종이 죽은 뒤, 16세의 선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면서 그 위상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권력이나 정치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섭정 1년 만에 수렴청정을 끝내고 17세의 선조에게 친정을 시켰으며, 이후로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과 친지들은 명종때부터 정권에 깊숙히 관여하여 그녀의 외숙인 이량과 족친 심통원, 그리고 친동생인 심의겸과 심충겸 등이 세력을 형성해 파벌을 이뤘다. 그녀는 1575년 창경궁 통명전에서 4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으며 단 하나뿐인 아들 순회세자는 13세에 요절했다. 능은 명종의 능과 같은 언덕에 마련되었으며 능호는 '강릉' 이다.

 

명종시대의 세계약사

중국 명나라에서는 지진과 기근으로 혼란이 가중되어 세력이 약해지는 때였고, 일본은 전국시대의 혼란이 가중되어 조선과 명의 해안지방에 왜구들의 노략질이 더욱 심해졌다.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개신교가 인정되어 종교 전쟁기에서 벗어나 평화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728x90
반응형